서류뭉치와 씨름하며 보낸 오후
지지난달이었나, 경기도 쪽에서 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 서류를 쓰기 시작했다. 앱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어서 평소에 머릿속으로만 그려봤던 인테리어 어플 기획안을 꺼내 들었는데, 막상 엑셀이랑 워드를 켜니까 내가 하려던 게 도대체 뭔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더라. 사업계획서 양식이 정말 끝도 없이 길어서 적다가 지쳐서 커피만 네 잔을 마셨다. 단순히 ‘앱만들기’라고 생각했을 때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데이터베이스 구조가 어떻고, 퍼블리싱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건지 같은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니 머리가 멍해졌다.
견적서 메일함만 쌓여가는 중
어플 개발 업체 몇 곳에 문의를 넣었더니 비용이 천차만별이었다. 대충 2천만 원에서 시작해서 기능 좀 추가하면 5천만 원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창업지원금이라는 게 사실 내 돈은 아니지만, 나중에 정산할 걸 생각하면 너무 비싼 업체를 고르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싼 곳을 고르면 결과물이 걱정됐다. 메일함에는 ‘견적서’라고 적힌 제목의 메일만 십수 통이 쌓여 있는데, 누가 봐도 자동 응답 같은 내용들이라 딱히 와닿는 곳이 없었다. 차라리 친구가 소개해준 프리랜서 개발자한테 맡길까 싶다가도, 나중에 유지보수는 누가 하나 싶은 걱정에 밤마다 사이트만들기 관련 포럼이나 돌아다니면서 시간만 낭비했다.
CRM 프로그램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앱 개발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앱을 만들고 나면 고객 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장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다들 ‘CRM 프로그램은 처음에 잘 붙여놔야 나중에 고생 안 한다’고 하길래 또 공부를 시작했다. 이게 또 구독료가 매달 몇십만 원씩 나가는데, 막상 우리 서비스에 필요한 기능은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인터페이스가 예쁜 게 최고인가 싶어서 몇 군데 테스트 계정으로 들어가 봤는데, 외국 프로그램은 한글화가 어색하고 국산은 뭔가 디자인이 2000년대 느낌이라 선뜻 결제 버튼을 누르기가 어려웠다.
직접 공부하는 게 나을까 싶은 생각
요즘은 노코드 툴도 잘 나온다길래 퍼블리싱을 직접 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튜토리얼 영상 몇 개 보다가 포기했다. 버튼 하나 옮기는데 두 시간씩 걸리는 나를 보면서 ‘아, 이건 내 영역이 아니구나’ 싶었다. 결국 다시 원래 계획했던 외주 개발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데, 사업계획서 마감일은 다가오고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심사위원들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창업은 감성보다 분석’이라던 어느 성공 사례 블로그 글을 봤는데, 분석을 하면 할수록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만 든다.
그래도 일단 써보기는 한다
사업계획서의 ‘기대 효과’란을 채우다가 멈췄다. 앱이 잘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당장 내일 개발사 미팅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정리가 안 된 상태라 글이 써질 리가 없다. 대출이나 지원금 상담을 받으러 은행에 가면 상담원분이 엄청나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데, 듣고 있을 때는 다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문 밖을 나오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게 제일 문제다. 지금 내 상황이 창업을 하려는 건지, 서류 놀이를 하려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냥 소박하게 시작하려고 했던 건데, 갈수록 판이 커지는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이게 맞는 방향인지 계속 의문이 든다.

앱 개발하면서 CRM 때문에 겪는 고충, 정말 공감돼요. 저도 처음 앱 만들 때 비슷한 고민을 했었거든요.
데이터베이스 구조 생각하니까 진짜 답답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