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 도입이 시작된 날의 풍경
한 2년쯤 전인가, 회사에서 갑자기 ERP를 도입한다고 해서 다들 뒤숭숭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사무실 분위기는 거의 전쟁터였다. 뭐만 하면 엑셀로 정리해서 메신저로 보내고, 결재는 또 종이로 출력해서 들고 다녔으니 효율이 떨어질 만도 했다. 경영진은 이번에 유명한 ERP 솔루션을 도입하면 마치 마법처럼 모든 게 자동화될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날 회의실에서 들었던 설명은 아주 화려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재무 상태가 나오고, 물류 재고가 실시간으로 잡힌다나. 솔직히 그때는 나도 속으로 ‘이제 드디어 야근이 좀 줄어들겠구나’ 싶었다. 견적을 보니 도입 비용만 해도 몇 천만 원 단위였는데, 그 정도 돈을 쓰면 알아서 다 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엑셀과 ERP 사이의 괴리감
막상 시스템이 들어오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건 내가 알던 엑셀보다 훨씬 불편한데?’였다. 도입 초기에는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라 다들 끙끙거렸다. 특히 인사 쪽 데이터랑 회계 쪽 데이터를 매칭하는 게 문제였다. 기존에 우리가 쓰던 엑셀 서식은 우리 회사만의 고유한 로직이 있었는데, 새로 도입한 ERP는 그야말로 표준 그 자체였다. 시스템에 우리 회사를 맞추는 건지, 우리 회사가 시스템에 맞추는 건지 헷갈리는 날들이 반복됐다. 표준원가계산이라는 개념도 처음 들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복잡했다. 예전에는 그냥 대충 원가 계산해서 보고하면 됐는데, 이제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규격대로 데이터를 쪼개 넣어야 했다. 입력하는 데만 하루 절반을 썼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업데이트할 때마다 터지는 소소한 버그들
시스템이 한 번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사무실이 멈췄다. 어떤 날은 로그인이 아예 안 돼서 오전 업무를 통째로 날린 적도 있다.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이라는 게 참 거창한 이름인데, 정작 현장에서는 ‘오늘 또 로그인 안 되네’ 같은 불평이 일상이 되었다. 외부 IT 업체 직원이 와서 이것저것 만지고 가는데, 그 사람들이 갈 때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기보다는 기존에 잘 되던 버튼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게 더 잦았다. 사실 이런 부분은 겉으로 보기에 엄청난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하던 업무를 굳이 다른 경로로 찾아가야 하는 귀찮음일 뿐이었다. 가끔은 예전 방식대로 엑셀에 먼저 정리하고 다시 ERP에 입력하는 이중 작업을 하기도 했다.
비용 대비 만족도는 글쎄
도입하고 나서 1년쯤 지났을 때, 과연 이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했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가격은 이미 꽤 나갔고, 유지보수 비용도 매달 들어가는 상황이다. 솔직히 재무 쪽은 눈에 띄게 깔끔해지긴 했다. 예전에는 매출 집계할 때 밤새워서 계산기 두드리던 게, 이제는 버튼 하나로 해결되긴 하니까. 그런데 물류나 영업 쪽은 오히려 입력 항목이 너무 많아져서 다들 불평이다. 영업 사원들은 고객 만나기 바쁜데,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필드가 20개가 넘으니 현장에서는 데이터 누락이 잦다. 이걸 해결하려고 또 다른 솔루션을 붙여야 하나 고민하는 걸 보면서 그냥 쓴웃음만 나왔다. 어딘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불편함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아직도 진행 중인 시행착오
최근에는 그룹웨어랑 연동해서 AI 어시스턴트 같은 걸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또 나온다. 가비아나 리벨리온 같은 데서 나오는 서비스들이 좋아 보인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솔직히 나는 이제 지쳤다. 도입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너무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는 여전히 시스템과 씨름 중이다. 처음에 꿈꿨던 효율화는 아마 한 60% 정도 달성했으려나. 나머지 40%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채워 넣어야 하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개선할지, 아니면 이대로 그냥 적응하며 살지, 경영진도 나도 딱히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도 시스템에 로그인을 한다.

엑셀로 꼼꼼하게 정리하던 데이터를 시스템에 맞춰 입력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