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국비지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청 버튼 근처에서 서성이다 창을 닫아버렸다. 처음에는 ‘AI 개발자’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해 보였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줘가면서 가르쳐준다길래 뭔가 확실한 길이 열리는 줄 알았다. K-디지털트레이닝인가 뭔가 하는 프로그램들은 교육비가 무료인 건 당연하고 매달 훈련 장려금까지 준다니, 솔직히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메리트가 맞다. 6개월 과정이면 짧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 생활비 걱정 없이 코딩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혹할 것 같다.
6개월 동안의 일상이 묶인다는 두려움
그런데 막상 상담 전화를 돌려보려고 하니까 마음이 턱 막혔다. 교육 기간이 보통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길게는 더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 취업이 안 돼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뭘 하든 나름대로 내 시간을 쓰고 있었는데, 그 6개월을 온전히 그 시스템 안에 갇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일단 들어가서 버티면 취업은 어떻게든 된다’라고 말하는데, 그 ‘어떻게든’이라는 단어가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다. 개발자 연봉이 높다는 소리는 매번 뉴스에서 보지만, 정작 주변에 보면 대학을 안 가고도 유통업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애들도 널렸다. 꼭 이 6개월짜리 교육을 받아야만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들었다.
정보처리기능사 필기 책은 펴지도 않았다
사실 교육 신청 전에 스스로 기본기는 다져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서점에서 2만 원짜리 정보처리기능사 필기 책을 샀다. 그런데 첫 장을 펴자마자 쏟아지는 이론 용어들에 질려버렸다. 이게 진짜 현업에서 쓰는 건지, 아니면 시험을 위한 공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더 집중이 안 됐다. 웹페이지 제작하는 방법 좀 배우고 싶어서 파이썬 강의도 몇 개 찾아봤는데,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온 강의들이랑 교육기관에서 하는 커리큘럼이랑 뭐가 다른 건지도 모르겠고. 결국 그 책은 침대 옆에 쌓아두기만 하다가 먼지만 쌓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정작 내 손으로 ‘Hello World’조차 제대로 출력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 신청을 하려니 스스로가 사기꾼처럼 느껴졌다.
멘토링이 나에게 맞을지 모르는 불안감
넥슨 같은 데서 메이플스토리 AI 툴킷으로 교육하고 멘토링 해주는 거 보면 참 좋아 보이기는 한다. 나도 그런 데 들어가서 멘토한테 질문하고 그러면 성장할 것 같고. 근데 사람마다 습득하는 속도가 다를 텐데, 30명씩 단체로 강의실에 앉아서 진도 못 따라가면 눈치 보면서 끙끙거려야 하는 그 환경이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됐는데, 이제는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나이 아니냐고 누가 말하던데 그 말이 참 무겁게 다가온다. 개발자 실무자들도 바빠서 새로운 기술 배울 시간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내가 6개월 배운다고 과연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 확신이 안 선다.
스타트업 500개 지원이라는데 나는 어디로 가나
정부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많이 한다는 기사도 봤다. 돈과 인력이 부족한 1인 개발자들도 AI 도구 써서 게임 만든다고 하더라. 내가 정말 원하는 건 거창한 취업 연계 교육이 아니라 그냥 내가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당장 서비스로 만들어보는 건데, 국비지원 교육은 자꾸 ‘취업’에 초점을 맞추니까 오히려 숨이 막힌다.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재미있게 만드는 게 목표라면 교육기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봤다. 나이 서른 넘어서 남들 다 가는 그 길을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덜컥 겁나더라도 혼자 유튜브 보면서 서비스를 런칭해봐야 하는 건지 결론이 안 난다.
그냥 무작정 혼자 해볼까 하는 마음
지금 다시 고민해도 모르겠다. 신청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사이트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재설정 창만 띄워놓고 30분째 멍하니 화면만 본다. 어차피 남들 다 하는 거 안 한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여기 목을 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냥 노트북 덮고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 일어나면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

정보처리기능사 책을 샀는데, 이론 용어에 질려서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4차 산업혁명 이야기보다 실제로 코딩해 보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