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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로 버티다가 결국 CRM을 건드렸는데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된 고객 관리

솔직히 처음에는 엑셀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다. 영업 관리고 뭐고 그냥 오늘 누가 전화 왔고, 뭘 물어봤는지 메모장에 적어두거나 엑셀 시트에 한 줄씩 추가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늘어나고, 상담 건수가 쌓이니까 답이 안 나오더라. 어제 통화한 사람이 뭘 물어봤더라 싶어서 기록을 찾아보면, 엑셀 칸마다 내용이 제각각이다. 어떤 날은 꼼꼼하게 적고 어떤 날은 귀찮아서 ‘상담 완료’라고만 적어두니 나중에 보면 이게 누구를 위한 기록인지 싶었다. 최근에 성형외과 같은 곳들은 CRM 체계가 잘 잡혀 있다던데, 우리가 하는 일은 무슨 대단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까먹지 말자’는 수준인데도 시스템 도입 이야기가 나오니 머리가 아파왔다.

이카운트ERP와 CRM 사이에서의 고민

주변에서는 다들 이카운트ERP를 쓰라고 한다. 사실 나도 그게 제일 만만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물류 재고 관리가 주력인 곳들이랑 우리가 하는 영업 관리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카운트는 확실히 생산이나 재고 관리에는 최적화되어 있는데, 고객이랑 오고 간 상담 내역을 끈질기게 붙잡고 추적하는 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랄까. CRM이라는 게 거창하게 마케팅 AI를 돌리고 DMP를 분석하는 수준까지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상담 이력만 잘 정리해도 되는 건지 기준을 잡기가 애매했다. 영업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해보면 ‘세일즈포스’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건 또 우리 규모에 너무 과한 것 같고 비용도 월마다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데이터 연동하다가 주말 다 보낸 이야기

결국 뭔가 시스템을 하나 붙여보자 싶어서 데모를 이것저것 써봤다. 문제는 기존에 쌓아둔 데이터를 옮기는 거였다. 과거 3년 치 상담 데이터를 정리해서 올리는데, 양식이 조금만 안 맞아도 오류가 뜬다. 통화 후 문자를 자동으로 보내주는 연동 기능 하나 써보겠다고 API 키니 뭐니 세팅하다가 주말을 거의 다 날렸다. 이게 나중에는 효율이 좋아진다는데, 지금 당장은 엑셀 붙잡고 있을 때보다 일이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 초연결 물류니 뭐니 기사에서는 쉽게들 말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그 연동 과정에서 툭툭 끊기는 부분들을 맞추느라 시간을 다 쓰는 것 같다.

정보 유출 걱정과 찝찝한 보안 이슈

얼마 전에 세븐일레븐 같은 대형 브랜드도 CRM 플랫폼 쓰다가 데이터 탈취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 같은 작은 곳이야 대단한 정보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고객 개인정보가 한곳에 다 모여 있다는 게 은근히 신경 쓰인다. 클라우드에 올리는 게 편하긴 한데, 가끔 서버 점검한다고 접속 안 될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ISO 27001 같은 인증받은 곳을 쓰라고들 하는데, 그게 우리 같은 소규모 팀에 당장 피부로 와닿는 건지, 아니면 그냥 비용 명목만 늘어나는 건지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결국은 사람 손이 더 가는 아이러니

지금은 일단 기존에 쓰던 툴이랑 새로 도입한 시스템을 반반씩 섞어서 쓰고 있다. 효율화를 하려고 도입했는데,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정작 영업할 시간은 뺏기고 있다. 어떤 날은 ‘그냥 예전처럼 메모장에 적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고, 나중에 데이터 쌓이면 뭐라도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오후 5시마다 입력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게 과연 마케팅 기획까지 연결될지, 아니면 그냥 비싼 디지털 기록장이 될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이 시스템이 우리 영업 방식에 딱 맞는 건지 계속 의문이 든다. 남들이 다 하니까, 시대가 그렇다니까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내일은 또 어떤 데이터가 꼬여서 오류를 뱉어낼지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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