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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업체와 CRM 시스템을 만들다 꼬여버린 날들

대구에 있는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던 날

작년 가을쯤이었나, 우리 팀에서 쓰는 고객 관리 프로그램이 너무 낡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엑셀로 일일이 정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대기업용 CRM 솔루션을 도입하자니 비용이 몇 천만 원 단위로 뛰어서 엄두가 안 났다. 결국 대구에 있는 홈페이지 제작 겸 소프트웨어 개발을 한다는 작은 업체랑 미팅을 잡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상담하러 내려가는 길에 KTX 안에서 들었던 생각이 ‘아, 이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안 되나?’였던 것 같다. 막상 업체 사람을 만나니 무슨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는데, 그게 사실 다 당연한 이야기들이었다. 개발 비용은 대략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사이로 견적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그 당시에는 빨리 이 지긋지긋한 엑셀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어플 개발이라는 거대한 착각

우리는 웹 기반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어플까지 연동하겠다고 야심 차게 계획을 세웠다. 마치 대리운전 앱이나 배달 앱을 만드는 것처럼 멋진 대시보드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안드로이드 빌드 하나 올리는 데도 매번 에러가 터졌다. 업체 쪽에서는 ‘API 연동 이슈’라고 말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우리 데이터가 제대로 안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개발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모킹’이라는 개념도 처음엔 뭔지 몰라서 한참 고생했다. 가짜 서버를 만들어서 테스트하는 거라는데, 우리가 원하는 기능은 뒷전이고 자꾸 그 환경 설정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 속이 탔다. 가끔은 업체 대표가 바쁘다며 연락이 안 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땐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업데이트할 때마다 터지는 버그의 연속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이게 정말 곤욕이었다. 업데이트만 하면 멀쩡하던 예약 시스템이 꼬이고, 갑자기 고객 정보가 공백으로 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개발자 한 명이 그만뒀다면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됐다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솔직히 그건 그쪽 사정이지 우리 사정은 아니지 않나. 컴퓨터활용능력 2급 정도의 지식으로도 충분히 수정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사소한 텍스트 문구 하나 바꾸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자사몰 제작할 때랑은 차원이 다른 복잡함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지만, 여전히 가끔씩 로그인이 안 된다는 고객들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기록되지 않은 회의록과 불분명한 책임 소재

가장 후회되는 건 처음에 요구사항 정의서를 제대로 안 썼다는 점이다. 그때는 그냥 ‘알아서 잘 만들어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컸다. 미팅 때 말로만 나누고 문서로 정리하지 않았던 기능들은 나중에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줄 알았던 데이터 엑셀 변환 기능이 유료 옵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업체 대표랑 얼굴 붉히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돈이면 차라리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 CRM을 쓰는 게 정신 건강에는 훨씬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서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수정 작업

이제는 개발 업체랑도 어느 정도 타협을 했다. 치명적인 버그가 아니면 그냥 놔둔다. 어차피 완벽한 프로그램이란 건 없는 것 같다. 가끔씩 외주 개발을 고민하는 지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냥 기성품 쓰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막상 그들 사정을 들어보면 또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도 새로운 기능을 하나 넣으려다가 서버가 잠깐 멈췄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나중에 혹시 다른 시스템으로 옮기게 되면 그때는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겠다는 생각만 막연하게 든다. 당장 눈앞에 쌓인 데이터 처리하는 게 급해서 오늘도 코드를 다시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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