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시작된 디지털 예약의 시대
지난달부터 우리 사무실에 새로운 회의실 예약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원래는 그냥 화이트보드에 이름을 적어두거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오늘 오후에 거기 써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님이 메신저로 링크 하나를 띡 보내더니, 앞으로는 무조건 이 사이트를 통해서만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처럼 쿨하게 공유 공간을 쓰던 시절은 끝난 모양이다. 픽코파트너스 같은 전문 솔루션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결재 로그가 남는 꽤 그럴싸한 시스템이라 다들 처음엔 당황했다.
15분 단위의 사소한 불편함
문제는 이 시스템이 15분 단위로 쪼개져 있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5분이면 끝날 미팅조차 시스템상 최소 30분은 잡아먹어야 예약을 마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회의실은 분명히 비어 있는데 예약 시스템 화면에는 ‘사용 중’이라고 뜨는 기이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다들 처음 써봐서 그런지, 회의가 일찍 끝나도 시스템에 접속해서 종료 버튼 누르는 걸 매번 까먹는다. 결국 내가 15분 정도 늦게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문 앞 키패드에 적힌 예약 번호를 입력할 때마다 괜히 쫓기는 기분이 든다. 가격이 얼마인지, 구축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알 길 없지만, 우리 같은 일반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냥 예전 방식이 훨씬 편했다.
로그가 남는다는 사실의 압박감
회의실 사용 기록이 메타데이터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다들 예약을 더 신중하게 하는 눈치다. 예전에는 그냥 잠깐 통화하러 들어갔던 공간인데, 이제는 모든 게 기록으로 남으니까 괜히 업무 외적인 용도로는 쓰기가 껄끄러워졌다. 킨드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AI 기반의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뉴스를 볼 때는 그냥 딴 세상 이야기 같았는데, 막상 우리 사무실 구석구석에 이런 기술이 침투하니까 감시받는 느낌마저 든다. 어제는 선배가 시스템 접속 기록을 보고 누가 회의실을 ‘독점’하고 있는지 따지는 걸 보고 참 씁쓸했다.
눈치 보며 입력하는 예약 정보
이제는 회의실을 쓰려면 미리 스마트폰 앱을 켜서 남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전에는 옆 팀이랑 얼굴 보고 조율하면 10초 만에 끝났을 일을, 이제는 시스템 안에서 빈 시간을 찾느라 5분씩 쓴다. 가끔은 예약을 미리 해놓고 실제로는 쓰지 않으면서도 취소 버튼을 안 누르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터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시스템이 효율을 높여준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던 유연함이 사라진 것 같아 영 찜찜하다.
결론 없는 매일의 예약 전쟁
뭐, 나중에는 다들 적응해서 익숙해지겠지 싶긴 하다. 근데 요즘은 매일 아침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회의실 시간표를 확인하는 게 되어버렸다. 이게 정말 스마트 오피스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을 시스템 안에 가둬두고 관리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회의실 문 앞에서 예약 안 하고 들어온 다른 팀과 마주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예약 시스템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불편함은 시스템 밖의 사람들 몫으로 남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