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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ERP를 바꾸겠다고 덤볐다가 퇴근 시간이 사라졌다

처음 시작은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우리 회사가 쓰는 낡은 관리 프로그램이 너무 느리고, 데이터 연동도 제대로 안 되어서 사람이 수작업으로 입력하는 비중이 너무 높았으니까. 사장님이 언젠가 물으시더라. “요즘은 다들 자동화한다던데 우리도 좀 편해질 수 없나?” 그 말 한마디에 꽂혀서 대뜸 ERP 시스템을 알아보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엔 그냥 국산 패키지를 사면 뚝딱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상담을 받아보니 웬걸, 우리 업종이랑은 맞는 게 하나도 없더라. 유통이랑 제조가 섞여 있는 우리 구조상 기성품은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오픈소스라는 환상에 빠졌던 시간

인터넷을 뒤지다가 Odoo(오두)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픈소스라 모듈별로 골라 쓸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기능만 딱 붙이면 될 것 같았다. 비용도 처음에는 라이선스 비용이 적게 드니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모듈 하나를 붙일 때마다 개발자랑 씨름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전문 개발팀이 있는 것도 아닌데, C언어나 파이썬 코드를 만질 줄 아는 사람도 없으면서 이걸로 다 해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안일했던 거다. 개발사 견적을 받아보니 초기 도입비만 거의 3천만 원 가까이 불렀다. 단순히 프로그램 구매가가 아니라 ‘커스터마이징’ 비용이 문제였다.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의 악몽

기존에 쓰던 엑셀이랑 낡은 전산 프로그램 데이터를 옮기는 게 진짜 지옥이었다. 예전 담당자가 남겨놓은 데이터 형식이 제각각이라서, 이걸 엑셀로 일일이 정제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 야근하면서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데이터 항목 하나라도 틀어지면 ERP 안에서 재고 수치가 엉망으로 튀어 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누가 ERP 도입이 그냥 클릭 몇 번이면 끝나는 줄 알았을까. 나중에는 전산회계 지식이 없는 내가 왜 복식부기 항목이랑 씨름하고 있는지 현타가 왔다. 결국 외부 컨설팅 업체를 불러서 도움을 받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게 깨졌다.

연동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

우여곡절 끝에 시스템을 올렸더니 이번엔 쇼핑몰 연동이 말썽이다. 자사몰 구축까지는 좋았는데, 오픈마켓 API랑 연동할 때마다 에러가 뜬다. 주문이 들어와도 ERP로 데이터가 안 넘어와서 새벽에 수동으로 입력하는 날이 아직도 많다. 쇼핑몰 통합관리 프로그램이랑 연동하면 편하다는데, 그것도 월마다 나가는 고정 비용이 꽤 된다. 사장님은 빨리 자동화하라고 재촉하시는데, 실상은 에러 잡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있다. 이게 경영 효율화를 위한 건지, 아니면 프로그램을 위한 노예가 된 건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유지보수가 진짜 돈 먹는 하마였다

구축만 끝내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스템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기존에 붙여놓은 기능들이 충돌을 일으킨다. 개발자가 유지보수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하는데, 한 달 관리비용이 꽤나 부담스럽다. SAP 같은 대기업용 ERP는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제3자 유지보수 서비스로 돌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같은 작은 규모에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비용을 아끼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지금은 오히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엑셀을 놓지 못하는 아이러니

지금은 시스템이 돌아가긴 한다. 입고 데이터가 연동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예전보다 빨라진 건 맞다. 그런데 왜 여전히 내 바탕화면에는 중요한 정리를 위한 엑셀 파일이 10개씩 켜져 있는 걸까. 시스템이 완벽하게 우리 비즈니스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시스템에 맞추는 법을 아직 덜 익힌 건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그냥 예전처럼 수동으로 하던 시절이 마음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다음 주에는 또 웹 개발 관련해서 회의가 잡혀 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추가 비용이 발생할지 벌써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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